'The Pianist'
폴란드 인이며 이 역사를 직접 경험했던
이 영화의 감독 '로만 폴란스키'의 말,
폴란드 역사에서 가장 슬프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영화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하지만 동시에 나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또한 있었다.
그러나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이 쓴 회고록의 첫 장을 열자마자 이것이 바로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그 영화'가 될 것이라는 직감을 했다.
마침내 그토록 찾아왔던 이야기를 만난 것이다. 그 회고록은 참혹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낙관적인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곳’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나를 끈질기게 괴롭혀 왔다.
절대 다수가 싸늘한 시체로도 남아나지 못한 그곳에서의 살아남음은 절대로 ‘안도’가 아닌 ‘죄책감’으로 나를 눌러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조각난 기억들을 다듬고 재창조해 나가면서 나는, 아니 우리는 또 다른 역사의 단면을 완성해 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 <피아니스트>가 우리가 겪어왔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한다.
피아니스트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은 실존인물이며 그가 쓴 회고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어떻게 해도 밝은 색깔로 표현할 수 없는 시대이며 역사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을 졸였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들었던 생각은
'스필만(주인공)이 죽으면 어떡하지?' 였다
너무 조마조마하고 너무 안쓰럽고 분노보다는 끔찍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스필만은 폴란드의 한 마을에서 가족과 평화롭게 살고 있던 유태인이며 피아니스트였다
스필만은 한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하다 폭격을 당한다
영화의 시작이 폭격이다 이제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천천히 조금씩 나치의 유태인 목조르기가 시작된다
스필만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여인 도로타와 함께할 수도 없고, 같이 걸을 수도 없으며
함께 차도 마실 수 없는 그러한 현실이 너무 안타깝기만 하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영화 내내 피냄새가 진동했다
유태인들은 푸른 별이 새겨진 흰색의 완장을 팔에 차고 다녀야 했고,
심지어 인도로 걷는 것도 안되며 집단 수용소인 '게토' 로 쫓겨나게 된다
유태인과 독일인 사이에 벽돌을 하나씩 쌓아올려 벽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제 유태인들은 그곳을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독일 군은 자기 기분따라 그냥 이유없이 유태인을 폭행하고 죽인다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그냥 벌레보듯 한 그런 시선으로 대한다
휠체어를 탄 유태인 노인이 일어서지 못한다는 이유로 창밖으로 노인을 던지고
일가족을 모두 총으로 쏴죽이고 시체들을 차로 지나가면서 뭉개버린다
갇혀 지내는 유태인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 그 이전에 배고픔에 굶주려 죽어나간다
어떤 여자가 들고 가던 죽을 뺏으려다 바닥에 쏟아버린 한 남자가 바닥에 쏟아진 죽을
마구마구 손으로 입으로 엎드려 퍼먹는 모습은 너무 불쌍하다못해 보기 불편할 정도로 안타깝다
하지만, 이런 게토의 생활도 이제 끝이 난다
1942년 게토가 폐쇄되고 노동을 할 수 있는 젊은 층을 빼고 나머지는 모두 기차에 몸을 싣게 된다
이 기차는 죽음으로 가는 기차였다...
그리고 주인공 스필만은 혼자 살아남아 독일군이 시키는 강제노동을 하게된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이유없이 그냥 유태인들을 골라내 총을 쏴 죽여버리는 일이 일상.
정말.. 이쯤되면 누가 언제 죽을지 몰라 영화보는 내내 조마조마한다
그리고 스필만은 노역장에서 탈출을 시도하고 성공하게 된다
탈출하여 전부터 친분이 있던 부부의 도움으로 은신처를 구하지만 창밖으로 게토의 벽이 보인다
그곳에서 얼마후 폭동이 일어나지만 독일군에 의해 진압되어 죽는 것을 보며
달라진 것이 없음을 보며 스필만은 무기력함을 느끼고 자신이 죽었을 수도 있다 생각한다
이 부분을 보면, 우리나라에도 일제시대 독립운동가가 있었지만 어떠한 희망을 보기 힘든 그런 시대에
그렇게 싸우고 버텨나간다는 것은 어쩌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추위, 배고픔, 외로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어두움, 끝이 없는 싸움, 죽음에 대한 공포...
이런 것들을 이겨내야하는 정신력으로 무장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까.
어쩌면 주인공이 느끼는 무기력함이 당연한 인간의 감정일지도 모른다.
주인공은 지루하고 배고픈 시간들을 보낸다
먹을 것도 없고 겨울이 되면 추위가 찾아오고 심지어 마실 것도 없는, 고독과 공포
그에게는 전쟁의 공포끝에 찾아온 생존본능만 남아있었다
은신처도 더이상 안전하지 않게되어 폐허가 된 게토로 돌아가 머무르게 된다
완전히 거지꼴로 다친 다리를 끌며 덥수룩한 수염을 한 얼굴로 야윈 몸뚱아리를 끌고 다닌다
예전에도 들었지만, 전쟁의 2차 공포는 배고픔이라고 했다
이 주인공을 보면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발버둥치는 인간의 모습을 잠시 찾을 수 있다
결국 그는 통조림 하나를 찾아내는데 그것을 따다 독일인 장교를 마주친다
너무 조마조마했던 독일인 장교와의 대화
독일장교 : What are doing here?
스필만 : ......
독일장교 : Who are you?
스필만 : .......
독일장교 : Do you understand?
스필만 : Yes
독일장교 : What are you doing?
스필만 : I was ...... trying to open this can
독일장교 : Do you live here?
스필만 : .......
독일장교 : Do you work here?
스필만 : No
독일장교 : What do you do for living?
스필만 : I am..... I was a pianist.
독일장교 : pianist..... come. play something.
스필만은 독일장교의 명령으로 피아노 연주를 하게된다
너무 배가고픈 나머지 피아노를 치러 가며 소중한 통조림을 꼭 들고 가서 앉는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피아노 연주인데도.
처음에는 어눌했지만 이내 곧 손가락을 움직여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독일장교 앞에서 하는 이 피아노 연주는 이 모든 상황이 더욱더 암담하게 느껴지게 한다
이 장면은 영화의 명장면으로 많이 꼽히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보면서도, 저 독일장교가 피아노연주를 요청하는 인간적인 모습에
살려줄 것도 같았지만 또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 훌륭한 연주소리가 더 조마조마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하지만 독일장교는 스필만을 살려주었고, 그가 살 수 있도록 여러가지 도움을 줬다
먹을 것을 가져다 주고 몇 주만 더 버티면 된다고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러시아군에 의해 독일군이 퇴각하게 된 날에도 스필만에게 찾아와 먹을 것과 외투를 건네주고 간다
외투를 건네주는 그 독일장교의 표정과 말에도 슬픔이 담겨있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이 전쟁에 독일은 패배하고 스필만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스필만은 다시 국영방송국에서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를 도와준 독일장교는 러시아의 포로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이 독일장교의 안타까운 결말이 이 시대의 상황을 더욱더 비극적으로 느껴지게 하고
학살당한 유태인, 학살을 저지른 독일군 양쪽 어느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원하지 않은
그러한 결말을 맞이했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깝고, 영화내내 나치에 대한 분노보다
끔찍하고 처참하다 라는 생각이 마음을 내내 불편하게 한 것 같다.
그들이 유태인이건 어떤 인종이건 사람의 생명은 차별없이 평등하고 소중히 여겨져야 한다
히틀러와 나치스에 의해 행해진 이 대규모 학살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용서를 구할 수도 없고 대가를 치를 수도 없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상위 선진국 반열에 들어있는 양심있는 국가가 된 독일이 적극적으로 그들을 추모하고
나라의 대표부터 나서서 그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잘못을 저지른 역사를 회피하지 않고 앞에 나서서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정말 모두에게 위안이 되는 현실인 듯 하다
우리나라에도 일제시대라는 비극적인 역사가 있었지만, 아직도 제대로 된 치유의 과정을 밟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일본의 진실된 태도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홀로코스트 : 일반적으로 인간이나 동물을 대량으로 태워 죽이거나 대학살하는 행위를 총칭하지만
고유명사로 쓸 때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나치스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대학살을 의미한다.
*나치스 : 히틀러를 당수로 하여 1933~1945년 정권을 장악한 독일의 파시즘 정당
정식명칭은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이다. '나치스'란 이름은 원래 정적들이 만들어 낸 얕잡아 부른 명칭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이 말이 전세계의 통칭이 되었다. 19세기 말엽 유럽에 일반적으로 공통되어 있던 반유대주의,
백색인종지상주의, 국가주의, 제국주의, 반사회주의, 반민주주의 사상을 기초로 하여 발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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