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완의 꿈>
바그다드 가는 사막 고속도로 옆
무함마디아 마을 텅 빈 주유소에서
정말 잘생긴 14살 소년을 만났다
사막에서 홀로 축구공을 갖고 놀다가
석양을 등지고 기도하는 마루완의 옆 얼굴은
붉은 사막이 다 쓸쓸해 보이도록 아름다웠다
코리아에 태어났으면 안정환을 꿈꾸거나
GOD를 꿈꾸거나 여학생깨나 울릴 녀석
마루완은 전쟁고아였다
기름 많은 이라크에 기름도 없는 주유소에서
잡일이나 거들다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가난한 마을 어른들이 모아주는 푼돈으로
빵을 사고 몰래 담배도 사 피운다
빌빌거리지 말고 차라리 바그다드에 가서
총 들고 사담 궁전이나 약탈하라고
어른들은 안쓰러운 홧김에 호통이지만
마루완은 씨익, 그 잘생긴 미소로 받아넘긴다
초승달이 이마에 뜬 사막에 앉아서
마루완 너의 꿈이 뭐냐고 물었다
자동차 운전기사가 되어 돈을 벌고 싶단다
그 다음 꿈이 뭐냐고 물었다
요르단에 나가서 사진관을 내고 싶단다
마루완은 말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두 눈에서 방울방울 별들이 떨어졌다
마루완은 젖은 목소리로 학교에 가고 싶다고
영어도 배우고 싶고 컴퓨터도 배우고 싶다고
정말 이렇게 사는 건 너무 끔찍하다고
전쟁 다음 또 전쟁인데 언제쯤 끝나겠냐고
내가 어른 되기 전에 정말 학교 갈 수 있겠냐고
테러리스트 같은 눈동자로 물어오는 것이었다
-박노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中-
<다 다르다>
초등학교 일학년 산수 시간에
선생님은 키가 작아 앞자리에 앉은
나를 꼭 찝어 물으셨다
일 더하기 일은 몇이냐?
일 더하기 일은 하나지라!
나도 모르게 대답이 튀어나왔다
뭣이여? 일 더하기 일이 둘이지 하나여?
선생의 고성에 나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예, 제가요, 아까 학교 옴시롱 본께요
토란 이파리에 물방울이 또르르르 굴러서요
하나의 물방울이 되던디라, 나가 봤당께요
선생님요, 일 더하기 일은요 셋이지라
우리 누나가 시집가서 집에 왔는디라
딸을 나서 누님네가 셋이 되었는디요
아이들이 깔깔깔 웃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으로 손바닥에 불이 나게 맞았다
수업시간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내 손바닥을 어루만졌다
어쩌까이, 많이 아프제이, 선생님이 진짜 웃긴다이
일 더하기 일이 왜 둘뿐이라는 거제?
일곱인디, 우리 개가 새끼를 다섯 마리 낳았응께
나가 분명히 봐부렀는디
쇠죽 끓이면서 장작 한 개 두 개 넣어봐
재가 돼서 없어징께 영도 되는 거제
그날 이후, 나는 산수가 딱 싫어졌다
모든 아이들과 사람들이 한줄 숫자로 세워져
글로벌 카스트의 바코드가 이마에 새겨지는 시대에
나는 단호히 돌아서서 말하리라
삶은 숫자가 아니라고
행복은 다 다르다고
사람은 다 달라서 존엄하다고
-박노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中-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
무기 감옥에서 살아나올 때
이번 생에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혁명가로서 철저하고 강해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허약하고 결함이 많아서이다
하지만 기나긴 감옥 독방에서
나는 너무 아이를 갖고 싶어서
수많은 상상과 계획을 세우곤 했다
나는 내 아이에게 일체의 요구와
그 어떤 교육도 하지 않기로 했다
미래에서 온 내 아이 안에는 이미
그 모든 씨앗들이 심겨져 있을 것이기에
내가 부모로서 해줄 것은 단 세가지였다
첫째는 내 아이가 자연의 대지를 딛고
동무들과 마음껏 뛰놀고 맘껏 잠자고 맘껏 해보며
그 속에서 고유한 자기 개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는 일이다
둘째는 '안 되는 건 안 된다'를 새겨주는 일이다
살생을 해서는 안 되고
약자를 괴롭혀서는 안 되고
물자를 낭비해서는 안 되고
거짓에 침묵동조해서는 안 된다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것을
뼛속 깊이 새겨주는 일이다
셋째는 평생 가는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자기 앞가림은 자기 스스로 해나가는 습관과
채식 위주로 뭐든 잘 먹고 많이 걷는 몸생활과
늘 정돈된 몸가짐으로 예의를 지키는 습관과
아름다움을 가려보고 감동할 줄 아는 능력과
핵을 읽고 일기를 쓰고 홀로 고요히 머무는 습관과
우애와 환대로 많이 웃는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그러니 내 아이를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유일한 것은
내가 먼저 잘 사는 것, 내 삶을 똑바로 사는 것이었다
유일한 자신의 삶조차 자기답게 살아가지 못한 자가
미래에서 온 아이의 삶을 함부로 손대려 하는 건
결코 해서는 안 될 월권행위이기에
나는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자 안달하기보다
먼저 한 사람의 좋은 벗이 되고
닮고 싶은 인생의 선배가 되고
행여 내가 후진 존재가 되지 않도록
아이에게 끊임없이 배워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저 내 아이를
'믿음의 침묵'으로 지켜보면서
이 지구별 위를 잠시 동행하는 것이었다
-박노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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